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오후 6시 30분
충무아트홀 대극장 8열 17번
#유준상 #한지상 #서지영 #이지수
내 생애 첫, 프랑켄슈타인.
다른 라센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너무 코리언스타일이라 깜짝 놀란 프랑켄슈타인 1막
앙리가 어떻게 빅터에게 마음을 나누게 되었는 지 공연을 보고 알 게 되어 기쁘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라서. 앙리가, 엘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빅터에 공감하고 마음을 온전히 주었다 생각. 한앙이 어린 빅터를 따라가는 눈빛이 너무 애처로웠고, 나도 한앙이 되어 눈물로 빅터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가 좀 미친 자라는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고.
한잔술 본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자첫. 진짜 울 뻔. 내 배우 왤케 날렵하고, 이 극에서 흥 뿜을 곳은 그 장면 밖에 없고.
공연을 보니 초연을 못 본 게 더 아쉬워지네. 평생 후회할지도.
1막에서 힘 뺀 목소리 너무 예쁘고, 프랑켄슈타인 존잼이라고 느끼지만, 마음 참 애매한 것.
물음표 가득했던 프랑켄슈타인 프리뷰. 어제 프리뷰 막공(?)을 보고도 애매한 기분이 들었지만 오늘 그 정체를 생각해보니, 극이 어렵다. 는 느낌인데. 연출과 팀의 고민만 느껴진다. 아직도 고민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충분히 이해는 되는. 표를 놓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됨. 내일부터 본공 시작인데, 고민의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다행이 목격자가 될 수 있겠고. 다시, 유한.
앙리가 실존인물이라면 정말 그렇게 생겼을 거 같고, 괴물이 실존한다면 또 정말 저런 모습일 거 같았다.. 앙리가 좀 민우스러운 데가 있기는 한데 나쁘지 않고. 민우는 호빈이한테 의사준비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친구를 위해선 그런 거 다 상관없어져 버리는 그런 인물이었으니. 더데빌 엑스 캐 해석이 쉬웠다, 는 어떤 인터뷰에서의 이야기도 명백히 알게 해 준 지괴여.
괴물이 머리가 좋은 게 과연 앙리의 뇌를 가져다 써서.. 인가.. 어떻게든 배우고 또 배우려 했을 지괴라서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이미 눈물도 안나올 만큼 운 무감정 괴물.. 인 것 같고
초랑켄과 재랑켄의 앙리 분량에 큰 변화가 없음에도, 이번 재랑켄에서 앙리가 쩌리같다는 느낌을 다들 이야기 하는 건 역시 절망-후회-상처 연출 때문이라는 생각… 2막의 앙리는 레베카같은 존재여야 하잖아요? 무대 위에 없어도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데.
보기 전에 기대/예상했던 프랑켄은, 이 극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거대한 은유로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였었는데. 까뜨린느와 소년은 예상치 못해서, 해석하기 갑자기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연출이 욕심부리기 딱 좋아보이기는 한데, 잘못하면 지랄발광이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 생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유일한 선은 '생명'인데 (살게하는 것 = 선, 죽게 하는 것 = 악) 과연 프랑켄슈타인이 논하는 '생명'과 '생명창조'는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다. '생명' 자체가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기 보다 (인간은 그 가치를 판단할 자격이 없음), 그 생명을 살게하느냐 죽게하느냐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선악의 범주인. 죽였다 살리는 생명창조는 과연.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고. 일단 죽음이 선행한다는 측면에서는, 악으로 규정지을 일이고. 괴물을 만들어 낸 빅터의 행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빅터는 자기가 살린 생명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무 감흥이 없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과, 그 여파에 대한 고려가 없음. 상처가 없는 이상한 과학자. 병자 빅터.
앙리는 괴물을 살게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왜 자기의 생명은 그렇게 쉽게. 정말로 부활을 믿고 있었던걸까. 적군과 아군의 생명을 비교하지 않던 사람이, 왜 자신의 생명과 빅터의 생명은 저울에 올려놓았던 거야. 자신의 생명도 빅터의 생명도 모두 살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지. 사랑에 눈이 멀면 그게 하나도 안보이는 건지?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에 어리석고. 어리석기에 불행하고, 불행해서 악하고. 뭐 그런.
앙리 모습의 괴물이 총구에 머리를 디민 것도 강직한 성품이라기 보단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 빅터왕자님이 와서 구해준건가. 앙리인지 괴물인지 알수없는 북극의 그 생명체는 과연 어느정도로 유약했는 지에 대해.
뻥뻥 뚫려져 있는 공간을 상상으로 채워간다. 프랑켄이 덕후를 대거 양산한 이유겠고.
지괴 너무 차갑고 섬뜩했다 온 세상을 북극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듯 모두를 죽임 되뇌어보는 괴물의 모습이 너무 차가워서 슬픈 건지 굳은 건지 잘 모르겠는. 앙리의 따뜻했던 눈빛을 생각하면 더욱 슬프고 아픔. 아이 떨구는 장면이 가장. 괴물의 악의 강을 건너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하는. 퀭한 눈빛으로 무감정을 표현하는데 그 무감정이 참 많은 감정을 가져다 준다.
모든 컨텐츠의 이상은, 인용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프랑켄은 어느 부분을 인용할 수 있을까.
컷콜 사진을 보다 보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알 수 없는 처연함을 느낀다. 모든 배우에게, 컷콜은 비우는 자리가 되겠지만. 내가 이 배우에게서 비운다, 라는 걸 느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제 눈에 들어온. 붉은 입술로 머금고 있던 붉은 피를 비워내는 것 만큼이나, 스스로 괴물을 비워내고 있는 게 너무 눈에 보이고, 으아, 이 프로세스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게 알 수 없는 감동을 주고. 어쩜 너는 나를 이렇게 매번 치고 가니. 대차게 치고, 은근히 치고, 치였는 지도 모르게 치고, 그대는 늘, 감동이고. 아 또 결국 본진앓이로 끝나는 후기.
캐릭터 창조가 생명의 창조. 배우가 숨을 불어넣어 있을 법 하게 만들어놓은 캐릭터. 물리적으로 풍선을 불어 형체를 만드는 느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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