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일 목요일 오후 8시 00분
LG아트센터 7열 13번
류정한 린아 서경수 주종혁 홍우진
임기홍 이용진 임재현
시라노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시라노는 시인인데, 그의 말을 자기의 말로서 하는 것, 그걸 믿게 하는 연기, 이게 관건이라. 뮤지컬배우는 노래를 하니, 이 노래를 자기 입에서 방금 만들어진 노래인 것처럼 할 것 이란 과제.
극장에 막 상쾌한 바람이 부는 뉴시즈 페어. 뉴시즈 보고 치였던 날 생각이 잠깐^^
린록산은 시라노의 좋은 면을 닮은 쌍둥이같은 사람. 린록산 보고나니 블리는 확실히 좀 어장관리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구나 싶다. 린아배우는 뉴시즈 때도 그랬지만 정말 좀 어른스러운 데가 있어서, 함께 하는 남자 배우들을 참 잘 돌보아 주고요. 류라노의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해 감동, 이렇게 깊이 가는 거 너무 좋음. 배우님 장점이죠.
Alone, 시라노 자신만 아는 자신의 마음의 크기. 모습을 숨기고 자신의 입으로 사랑을 전한 일의 대가. 그 순간 가졌던 욕망에 대한 벌. 이게 입을 다문 속죄로 이어지는 구나.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했고.
페스트리와 시 넘버 들으면서 매번 울어서, 나 너무 부끄럽고, 유난스럽다. 록산이 시에 감격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순간. 이렇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 전하는 넘버 흔치 않을테고.
록산의 집 발코니 아래 세 사람이 이루는 삼각형, 몹시 아팠는데. 시라노의 등을 바라보는 록산과 그 록산을 올려다보는 크리스티앙. 그리고 자신의 말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시라노. 이 구도.
거인을 불러와 조명 두 개 나와서 그림자 두 개 생기는 거 너무 좋고
극 너무 좋아서 다행이다. 이 옛날옛날옛날 이야기가 내 마음에 바람을 일으킨다. 잡념도 날아가버렷.
아, 너무 좋다고!!!!!!! 이 서정시 같은 극 너무 좋고!!!!!!! 류는 이런 거 왜 이렇게 잘하냐고!!!!!! 좋아서 화난다고!!!!!!
오늘로 끝낼 수 없는 이 확실한 기분.
하지만 온전히 이해한 시라노라는 사람도, 캐릭터를 훼손해가면서까지 많이 타협한 린록산도 마지막씬을 구원하지 못했다. 드기슈도 하는 사과를 시라노는 하지 못하고, 그동안 사랑의 시를 쓰지 못한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그 상황에서도 시를 쓰고 있는. 그래서 오늘도 2막의 감상은, 록산한테 왜이래. 흐어어어엉
1막까지만 봐야하는 걸까. 사실 사랑을 노래하는 시라노는 전장에서 크리스티앙과 운명을 함께하고 (두 사람 분의 생명) 그 뒤로는 사랑이 없어진 날카로운 시만 쓰며 전쟁터와 같은 15년을 보낸 것 같았고. 마지막에 찾아온 그는, 시라노 본인이 아니라 사신일지도.
그리고 시라노의 죄가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깨달아서, 여튼, 시라노 자체에 대해서는 다 이해함. 하지만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시라노가 한 것이 과연 사랑인가 여전히 의문이 남는.
린록산 좋다는 거 뭔진 알겠는데, 캐릭터는 꽤 훼손되었다는 느낌. 록산 이렇게 착해? 애지간 해서 타협하지 않는 시라노를 닮아도 될텐데. 아니,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드기슈에게도 죄책감을 갖는 그녀가, 드기슈를 기망하고, 별 생각없이 그리 결혼할 수 없음. 다만, 슬프게 전한 시라노의 진심이 그녀의 사랑을 강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 결혼을 결정했다, 로 이해할 수는 있는 록산.
1막에서는 시라노가 록산에 대해 훨씬 잘 알지만 2막에 이르면 크리스티앙이 록산을 더 잘알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들. 하지만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랑은 결국 진실을 보는 눈을 가려버리고. 시라노가 성장하지 않아서 혹은 성장할 수 없어서 많이 슬프고 2막이 찝찝하다. 록산도 크리스티앙도 심지어 드기슈도 이루어낸 성장이 왜 시라노에겐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
마지막 씬에 시라노가 등장해 입을 여는 순간 쏟았던 눈물은 모두 거두어지고, 나의 눈물은 한두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크리스티앙에게 드리겠나이다.
시라노가 록산에게 반한 이유는 그녀가 자기의 외모가 아닌 영혼을 봐주었기 때문인데, 왜 그것을 돌려주지 못하나요, 시라노. 니 영혼이 소중하면 남의 영혼 소중한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받는 사랑에 취해있으면서 그녀의 돌보는 마음씨에 의탁하고 있을 뿐이면서, 그것을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그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 아무리 멋진 시인이라도 그냥 박수만 치고 볼 수는 없엄.
린록산을 보면서, 저 사람이 시라노라면 똑같이 했을 것이다, 쌍둥이 같다는 생각, 특히 시라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의롭고 정직한 면을 닮은 록산이라 생각하면서 봤는데, 그러니 더 열받는 거지. 블리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어른스럽고 돌보며 양심적인 록산인데, 여전히 이 비극을 겪어야 하는 록산의 원죄는 쉬이 찾을 수 없고.
2막까지 다 보고난 후 개취는 블리라는 결론이. 록산이 좀 난해하고 낯선 캐릭터이기는 한데, 록산의 설정 자체가 좀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인 것도 맞고. 린록산이 좀 더 지적이고, 그래서 크리스티앙에게 쏟는 감정이 더 입체적이라. 사람들이 좀 더 마음을 주고 싶은 록산인 건 알겠다.
빵과 시 넘버를 엄청나게 앓는 관객으로서는 2막에 록산과 라그노 등장에 배경음악으로 빵과 시 들어가는 거 저 너무 너무 너무 이다. 빵도 없고 시도 없는 전쟁터에 라그노라는 빵과 록산이라는 시가 들어와, 이들에게 삶의 기운을 전달하는 것. 다시 오열.
인터 때 진짜 어이없이 쥘쥘 계속 짰는데, 이 극을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냥 그만볼까. 1막만은 진짜 매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막씬이 진짜 너무 타격이 큼.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을거야. 너를 사랑하지만 절대로 너에게 말해주지 않을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줘. 혹은 기억해줘." 어쩌라고.
록산 엉엉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거야." 이거 진짜 최고의 나르시시스트 선언.
류르가 시라노캐릭터를 뼛속까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어서 더 화가 나는 지도 모르지
나의 사랑이 당신께 누가 되지 않도록.
바라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바란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내 사랑이 당신께 누 되지 않도록
바라지 않는다고 말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