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8일 수요일 오후 8시 00분
샤롯데씨어터 13열 15번
한지상 마이클리 외
# JCS 20150708 담백한 마한
지저스: 마이클리
유다: 한지상
마리아: 이영미
빌라도: 지현준
1. 6월 21일에 봤던 캐스트는 한지상빼곤 다 다른캐스트였군. 박은태-한지상-장은아-김태한. 6월 21일에 본 공연은 솔까 2막 게쎄마네에서 나온 대박음향사고로 거의 망한 공연인데, 그 와중에 덕통을 당하다니 기특. 이번에 보니까 2막의 분위기는 겟쎄마네가 어땠느냐 90%이상인데, 지난 공연에서 내가 2막에 집중할 수 없었던 건 어쩜 당연. 덕통은 1부에서 이미 당했던 거라 상관없었지만. 그리고 음향사고 전까지 배우들 연기, 감정 너무 좋았었고. 정말 아쉬웠지. 이번관극을 자첫이라고 여겨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다음 번에 또 음향사고를 경험하게 된다면, 단호하게 뛰쳐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망한 공연을 애정배우 보겠다고 관람하고 앉아있는 건, 나에게도, 극에도, 배우들에게도, 극장에게도 절대 좋지 않다. 극의 이미지를 흐리고, 안좋은 기억을 남긴다. 조각에 불과하다 해도, 안좋은 기억이란 결국 극이 추구했던 진실을 훼손하기 마련. 안본것만 못한.
2. 어제 본 지크슈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조연배우들과 앙상블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다고 이유를 추측하지만, 주연배우들이 연기를 꾹꾹 눌러, 다른 배우들을 배려하는 태도가 느껴졌는데, 그래서인지, 잡스러운 게 없고, 온전히 텍스트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서, 정말 좋았던.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를 눌러서 한 까닭인지, 오케스트라가 커버치려고 그랬던건지, 어제 연주가 진짜 짜장이었는데. 이야 자첫으로 이런 공연을 보는 건 진심 행운이다.
3. 최애배우란 걸 인식하고 본 첫 공연이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한유다만 보려했는데 아니 보려했다기보다, 당연히 그렇게 되었었는데. 한유다 포지션이 적어도 1막까지는 관찰자라,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극 전체가 잘 들어왔던. 그리고 유다를 발견, 발견, 발견.
4. 겉도는 유다,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는 유다, 교만한 유다, 잘난체하는 유다, 예수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유다, 예수에게 흠뻑 빠진 다른 제자들과 민중들을 비웃는 유다. 마리아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는 유다. 냉소적인 유다. 예수님을 평가하려 드는 유다. 제사장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믿는 유다. 무책임해지고 싶은 유다. 스스로는 날카롭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제대로 못보는 유다. 본질을 찾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유다. 생각이 너무 많은 유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다. 납득하지 못하면 마음을 열지 못하는 유다. 그래서 외로운 유다. 2막에 이르러, 제가 한 짓을 보게 되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걸 알게 되는 유다. 너무 늦게 깨달은 유다. 그리고 다시 실수하는 유다.
5. 유다의 화해는 슈퍼스타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진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즐겁게 외치는 유다의 노래는, 사실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회한. 괜찮아. 어쨌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그를 사랑하니까. 납득은 안되지만, 그것만은 분명하니까.
6. 마저스 이야기를 해야한다. 은저스는 신의 아들 같았다면, 마저스는 사람의 아들이었던. 우리가 예수를 이해하려고 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왜 하느님은 자신의 대리자를 사람의 아들로 보냈냐 하는 것. 그리고 예수는 정말로 신의 아들인가. 아니면, 그저 예언자?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리는 지점. 서구역사의 기독교와 우리나라 개신교의 태도가 갈리는 지점.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는 예수님의 부활까지는 다루지 않는다. 예수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그리고자 했고,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 물론, 슈퍼스타 같은 넘버를 포함시켜 부활을 간접적으로 그려내기는 하지만. 슈퍼스타에서도 여전히 놓지 않는 건, 인간이라는 관점. 자 그럼, 인간은 무엇인가. 신이 자신의 모습과 닮도록 만들었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고, 완전할 수 없는. 원형에 더 다가가자면, 그럼 인간의 원형인 신은, 완벽한가.
7. 마저스는, 인간 예수의 면모를 완전히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인간같이 복잡한 존재가 없다. 알고, 느낀다. 안다고 느끼게 되는 게 아니고, 느낀다고 모두 아는 것이 아닌. 이것을 모두 구분해 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버리면, 인간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존재가 되고 만다. 마저스는 평온했지만 복잡했고, 게쎄마네에 이르러서는 극복했다고 느껴졌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거대한 운명, 광활한 세상속의 아주 작은 개체에 불과한 인간의 존재를, 그 보잘것없음을 받아들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신의 아들로서 겪어내야 했던 인간. 결국은 다 겪고, 인간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겠지. 지쳤던 마음은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마저스는 할 수 있었고, 유다는 할 수 없었던.
8.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게쎄마네는 사춘기 소년의 노래같기도 했다. 질풍노도, 분노, 나를 존재하게 한 이에 대한 분노, 동시에 갈구하는 애정, 자신의 운명에 대한 한탄, 그 모든 것을 지르고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은 부모뿐이고, 그렇게 하늘에 질러대고 마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사춘기를 잘 겪어야, 훌륭한 성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9. 유다와 마저스는 인간과 신으로도 비유될 수 있고, 추종자와 지도자로서도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추종자 역시 지도자의 위대한 뜻을 다 알아내기는 어려운. 온전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그가 신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이가 되는 건 다른 문제. 반면, 신의 뜻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위대한 지도자의 뜻 역시, 일개 추종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지도자가 자신의 뜻을 이룰 추종자를, 신은 자신의 뜻을 이룰 인간을 어떻게 선택할까. 완전한 이를 선택해야하나, 부족한 이를 선택해야하나. 누가 가장 적절한가.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가 그려낸 유다는, 예수라는 지도자가 혹은 신이 배신자 역할을 유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것이 운명이라는 걸 충분히 설득시켜준.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캐릭터는, 아마도 유다.
10. 유다와 빌라도는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유다의 죽음 이후 빌라도는 마치 유다의 영이 씌여, 마무리를 담당한 자로 보인다. 이들의 내적 갈등 역시 유사. 유다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고, 빌라도는 자신의 운명을 정확히는 모르고 당했다 는 정도가 다를까. (당했다고 표현하는 거 너무 웃기지만. 신과의 게임에서 인간은 항상 당할 수밖에 없는ㅎ) 마저스가 죽음 앞에서 너무나 초연했기에 빌라도의 어떤 내적인 괴로움이 더 안타까워 보였던. 슈퍼스타에 이르러서 내가 했던 생각은. 빌라도랑 유다랑 지옥 어디 한 구석에서 낄낄대며 예수님 뒷담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별 수 없게도, 그들의 운명은 지옥이었을 거고, 그리고 나름의 죄값을 치르며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쪽은 천국에 가려고 낑낑대는 사람보다는, 대의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냥 죄를 짓고 지옥에 가겠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나 역시 후자가 되고 싶고. 아마도 내가 유다에 치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