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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마리퀴리

마리퀴리 #1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오후 8시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A구역 1열 2번

김소향 김히어라 임별 양승리 이예지 장민수 주다온 조훈

 

먼저 김히어라 김소향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마리퀴리를 입체적으로, 이 캐릭터를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소향배우의 연기력과 그를 보는 히어라 안느의 곧은 시선인 것을.

1막은 어쩐지 차가웠고 2막은 놀랄만큼 뜨거웠다.

소향마리가 극의 시작에서 보여준 마리와 극의 말미에 보여주는 마리는 같은 장면이지만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 마저도 너무 좋게 느껴졌다. 첫 장면이 극을 다 지나고나서 다시 나오는데 그 때의 느낌과 인상은 처음의 것과 매우 달라진다. 아이다에서도 그랬다.

과학자/엘리트의 앎에 대한 욕망은 결코 사적일 수 없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은 없다고 믿는다. 스스로 중립을 주장하는 과학은 그래서 이걸 사적인 앎의 욕구로 치환해 설명하려는 과학은, 많은 중립을 주장하는 다른 사안들처럼 비겁하고 차갑다.

인간의 선택이나 재량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고, 그러해서도 안된다. 인간의 앎에 대한 관심이 그 자체로 옳고, 그 욕망에 '끝'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의 이런 중립을 표방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대상화하게 만들고, 과학자 스스로를 고립시키곤 한다. 과학자에게 당신이 하는 그 과학과 그 모든 작업들보다, 당신이라는 인간의 존재가 더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말해주는 일은.

자신의 발견이 자신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한 환경, 자원,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준 사람들과 나누어야하는 공로라는 걸 알게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들의 노력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1막의 마리는 자신이 과학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과 싸우거나 혹은 미뤄두면서 성장한다. 2막의 마리는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동안 외면해왔던, 함께 시간을 보내왔던 사람들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치루어야 했던 대가를 알게되면서 성장한다.

마리퀴리를 보게 될거라고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마리퀴리와 함께 당연히 크레딧에 함께 올랐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내려가는 커튼콜을 선물하는 극이다.

마리는 자신의 발견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말하지만, 과학자의 개성을 만나야만 발견되는 진실도 있는 것 같다. 마리퀴리의 발견이 좀 그러한 것 같고.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지워진 이름같은, 하지만 결국은 빛날 이름인 라듐.

한 인간의 삶이 내게 통째로 들어올 때, 밝게 빛나는 빛으로만 여겨졌던 사람의 안쪽에 지난한 시간과 어두운 고통, 스스로 바라보기조차 어려워했던 외로움이 깊게 다가올 때, 온몸을 감싸는 뜨거운 공기. 내가 마리라면 이러한 재해석의 기회를 마련한 창작자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꼈을 것 같다.

1막이 끝났을 때, 이 극이 마리퀴리가 곧 라듐이라는 걸 증명해갈것으로 믿었지만 내가 어리석었다. 마리퀴리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46개월이나 계속해서 실패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마리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하고 성장하는데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후회 많은 이들의 실망과 지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2막이었다. 길잡이 흙은, 당신이 돌아 돌아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은 답을 만들어내리라는 걸 믿는다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된 2막. 암네리스와 아이다의 스트롱슈트 리프라이즈가 생각이 났다. 결국은 찾게 될, 반복해 실패하겠지만 언젠가 찾게될 나에 대한 강한 믿음.

너무나 관객을 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놓은 장면에 우리들이 모두 함께 뻔하게 울고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 자체가 극의 주제의식과 맞는 상황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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