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일 일요일 오후 6시 30분
광림아트센터 BBCH홀 C열 20번
최재웅 박지연 송원근
웅라노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게 깊다. 내가 감히 이해한다 말해도 될까 싶은. 재웅님 원래도 사랑했지만 더 많이 사랑합니다. <안녕, 내사랑>에서 시라노가 자신의 마음을 입 밖으로 드러낸 자신의 말이, 자신의 귀에 닿으면서 생기는 해방감, 후련함. 마음을 숨기는 게 제일 어려운 시라노에게 2막의 말못하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능히 짐작이 된다.
젼록산은 훨씬 여유없이 절박하고, 이 사랑에 모든 걸 걸고 있어서. 시라노도 그걸 알아서, 그런 설득이 있는 록산인 것 같다. 닮은 꼴이 주는 은유보다, 이 시대 여성의 한계가 더 느껴지면서 절박한 느낌이 드는. 재주껏 최선을 다 했지만 그래봤자 그녀가 연 문은 닫히고 만다. 있는 힘껏 사랑하고, 있는 힘껏 공부하고, 시라노에게 사랑해요, 라는 말을 제대로 전할 여유도 없는 록산. 간신히 드기슈를 물리치고 크리스티앙과 자기자신을 구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한 순간에 전해지는 비보와 이별. 정말로, 뭘 해낼 수 있을 지, 자꾸 넘어지고 무너지는 록산이다. 그렇게 직전에 퇴장한 록산의 감정을 이어받은, 시라노의 나홀로 Alone. 여기서 록산과 시라노가 겹쳐지면서, 이 영혼의 동질감이 느껴지게 된다. 시라노에게는 코라는 컴플렉스가, 록산은 최선을 다한 노력이 가장 나쁜 결과를 낳은 그 절망이. 이 두 영혼이 계속 싸우고, 거인 앞에 나를 데려다 놓으라는 분노와 용기의 시작. 웅라노의 Alone이 지연록산의 Alone 이기도 해서. 재웅의 깊이가 크게 느껴지는 장면.
지연록산과 웅라노는 이렇게 서로를 우연히 마주치게 될 때의 울림이 크다. 서로를 마주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어느 시간에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운명의 쌍둥이보다, 운명의 짝이 더 잘어울리고. 크리스티앙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프고 그렇다.
하나배우가 시라노를 동경하고, 시라노와 닮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하지만 여러 방식으로 성장과 분화의 여지가 남아있는 록산이라면, 지연배우의 록산은, 시라노와 다르게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혼이 닮았기 때문에 결국 같은 길로 접어드는 것 같아 보이는 록산이다. 류라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케미는 웅이랑 더 좋을 것 같은 느낌. 전에 블록산에게서 보고싶었던 것들을 지연록산이 잘 구현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이 정도로 독특하고, 이 정도로 어른스러운 록산을 원했어. 그 무엇보다 록산의 그것들이 허영심이 아니라, 절박함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이, 매우 독특하고 설득력을 주는 듯.
이 록산의 타이밍과 시라노의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크리스티앙의 죽음과 함께 시라노의 사랑이 그 자리에서 멈추고, 그저 록산의 처분과 록산의 시간을 기다리는 시라노, 그리고 15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시라노를 따라잡게 되는 록산.
지연록산과 웅라노의 둘 다 상대배우를 잘 읽고 호흡을 맞춰가는 게 잘 되는 배우인 것 같다. 어느정도의 체념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그 정서가 공유되면서. 그리고 시라노의 코와 같은 상처가 록산에게 주어지면서, 그렇게 돌고 돌아서 결국 마주보게 되는 시라노와 록산. 아, 진짜 넘 좋았다. 젼록산 해석 너무나 완벽해. 참 곱씹기 민망할 정도로, 맥락이 잘 꿰어지고, 성장이 드러나고, 좀 약간 이 캐릭터에게 연민과 응원을 충분히 보낼 수 있게 됨.
마지막 수녀원 씬, 그렇게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씬 몹시 감동적이었다. 사랑하는 상대로서 서로를 처음으로 바라보는 시라노와 록산.
시라노를 가장 보고싶을 때가 언제인가? 맘에 드는 시라노를 보고나온 직후다. 시라노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시라노 볼 때마다 나는 크리스티앙을 위해서만 울거야 마음먹는데... 오늘은 웅라노 젼록산 때문에 울었고... 이 록산에게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도 시라노에 대한 사랑도 완전히 온전하다
정붙이기 힘들었던 낚시터 크리스티앙 넘버랑 완전히 화해했어.... 정말 좋은 배우 원근배우.
르브레 라그노의 크리스티앙에 대한 양가감정, 시라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회차가 지날 수록 깊어지네....
조연들의 분투에서, 시라노가 지키고 싶었던 일상과 그가 기꺼이 거인과 맞서싸운 이유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