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인퍼 #05
2017년 8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00분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B3-10
방진의 이도엽
다섯번째 자막 총막 #비너스인퍼 #헤일아프로디테
0. 권력을 취하려면 사랑이 없어야 해. 있다해도 끝까지 숨겨야 하지.
1. 오늘 비너스인퍼 진짜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극 만들려고 직접강림해 연출가가 되신 방진의벤다죠르단. 그녀. 바깥에서 팔짱끼고 있던 연출가를 무대로 끌어올리고. 연출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잘근잘근 밟아서 결국 이 극을 끌어내어 만들어냄. 도엽토마스가 정말 많이 잡았고, 진의벤다의 디렉션 아래에서 정말 재밌게 놀고, 자신만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본연의 모습을 많이 꺼내 놓았던. 오늘 너무 "결과물"같았던 비인퍼. 오늘 비인퍼는 진짜 풀어놓고 진의벤다 맘대로 하게 한 연출이었는데...; 그래서 사심 많이 들어갔고..; 안하던 실수들 잔잔하게..;;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것을, 실수가 있더라도 해보는 경험이 여자들에겐 더 필요하다.
사실 이정도 살고, 가장 많이 놀란 건,,... 어떤 사람들에겐... 특히 주로 남자들에겐.... 시행착오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거였다...;;; 난 그게 무서워서 그 한 뼘을 못나간 적도 많았는데...;;;; 처음에 의뢰받았을 때, 쉽게 오케이가 안되어서 이틀정도를 고민했는데, 왜냐면, 내 자격, 같은 것이 자꾸 걱정되어서...;;; 코너 이름이 우먼스플레인이 아니고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자각하지 않았다면 아마 못/안썼을 거다. 완벽한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고. 자격이라는 게 되어야 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있으면 그게 자격이다, 라고 까지 생각이 미친 후에야 써보겠다, 는 마음이 동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나서 드는 생각은. 어째서 그렇게 학생회장을 머저리같은 남자애들한테 넘겨주었지? 왜 전의협이나 대전협 회장같은 거 해볼 생각 안해본거야. 왜 거기서 한계를 그었지? 사실 그 머저리 같은 인간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서 피한건데, 그리고 내가 완벽한 의대생/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내 자격을 거기서 멈추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남자들은, 너무 많은 시행착오의 기회와 실패하고나서도 비난받지 않을 권리를 얻는다. 그냥 거기 있었으면 되었고, 버텼으면 되었는데. 뭐 여튼. 큰 논쟁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한 번쯤 읽어줄 정도의 글을 써놓고. 역시 이 작업에서 제일 큰 수확을 얻는 것은 나 자신인 것. 이 작업 자체에서 좀 각성을 한 것들이 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튀어나와
내게 질문을 많이 던졌다. 어디에 존재할 것이냐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진의벤다처럼.
사이에 영화도 보았는데, 영화는 별로였다. 비추. 이건 반드시, 이 런웨이무대의 ‘연극’이어야만 하는 작품이다. 벤다를 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나는 페미니스트 관객으로서, 의식적으로 여캐를 더 언급하고, 여배우를 더 관대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당장의 제작사를 비난하는 것보다, 많은 여캐/여배우가 실수하고 성장하는 걸 지켜봐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나의 엄격함이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지 않도록. 처음에 비너스인퍼 볼 때 지이페어에 대해 갖게 된 위화감 약간 그거였다. 지현준 배우가 너무 눈에 띄는 바람에, 이경미배우가 잘 안보였던 것. 너무 감정적으로 크게 끌고가는 페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상태였다면 무척 불만스러웠을 것 같다. 나중에 결국은 이경미 배우가 자리를 찾아가고, 본인이 찾아가고 지배우가 도와준 그 자리에서 크게 존재를 폭발시킨 덕분에 결국은 화해하고 대만족하게 되었고.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지.
4. 어쨌든 우리는 쉽게 여자들에 대해서 더 엄격해진다. 그게 저항이 덜하기도 하고, 본인이 훌륭한 여성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할텐데. 누구나 변화할 수 있도 성장한다고 믿는다면. 남겨놓은 너그러운 공간들이 다 좋은 토양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5.헤드윅을 무척이나 보고싶은 날이었지만, 비너스인퍼를 잘 보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