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넥스트투노멀

넥스트투노멀 #03

bluecotton 2018. 4. 2. 17:03

2016년 1월 2일 토요일 오후 3시 00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B구역 1열 9번


박칼린 이정열 최재림 전성민 백형훈 임현수


형훈헨리 자첫. 2016년 첫 관극, 올해 마지막 관극도 이거였으면. 지게로. 되도 않는 바람. 


재게 진짜 못됐다. 그 못된 재게가 절박한 표정과 몸짓으로 상자를 꺼내 가져다 놓을 때 마음이 무너지고 그동안 참아왔던 게이브를 위한 눈물이 콸콸. 지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재게. 오늘 첨으로 1열에 앉아서 나탈리 연주회때 게이브 표정봤는데 정말 못된 오빠같았는데, 경게도 저런 표정일 지 궁금하다. 첫 씬에서 수건도 안두르고 나와서 막 몸매 뽐낸 재게.


지게는 정말 맨날 동생 골려먹고 장난치는 완전 개구쟁이 오빠였을 거 같다. 한지상 배우님 게이브 해주시면 안되나요.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난 산전수전 다 겪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런 게이브, 그래서 집에서 겪는 이런 일 아무렇지도 않고, 아니 그래서 그냥 갈 곳 없어 슬프기만 한, 집에 올 때마다 아픈 그런 게이브. 


정열댄, 너무 울리심. 성민나탈리까지. 이 집의 불을 켜고 지켜온 부녀. 정열댄 때문에 울어버린 순간 중의 하나는, 그 날을 어찌잊어, 너를 잃은 그 날을, 할 때. 오르골을 보는 다이앤을 보는 장면. 다이애나가 잃은 건 아이이지만, 댄이 잃었다고 생각하는 건 다이애나구나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큰 데도, 같이 미치고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어고, 그렇게 인간존재의 슬픔이 마음에 닿아. 


생각해보면 댄이 다이애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계속 피하고 끝까지 못했던 건, 다이애나 때문이 아니고, 본인이 이미 견딜 수 없어서였지. 그랬지. 그건 경주댄에서 더 잘 드러나고. 정열댄이 보여주는 건, 그렇게나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건 어렵고. 그래서 사랑 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그렇지만 another day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다고. 헨리마저도 그게 쉽지 않아서 perfect for you를 부르고, hey를 세 번이나 하고, 또 다시 perfect for you 그리고나서야 조금 보이게 된 거잖아. 사랑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힘. 그리고 또 앞으론 모르는 거. 행복도 사랑도 평범도 모두 dynamic equilibrium. 


오케 컨디션 너무 좋아서 밤공도 엄청 좋을 것 같다. 심장을 쿵 내리치는 프렐류드. 완전. 


마지막 넘버에서 각자 서는 위치도 참으로 마음에 꼭 드는데. 맨 아래 굿맨부녀와 헨리, 2층엔 다이애나와 닥터매든, 그리고 3층엔 게이브리엘. 차가운 땅을 딛고 선 가족과 친구들. 다이애나와 그녀를 돕는 의사. 그리고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게이브의 피라미드 형태. 


헨리가 댄보다 나은 남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형훈헨리는 댄보다 나은, 실로 완벽한 짝이 될 것도 같더란.


우리는 이 가족의 한 시기를 보는 거지만, 굿맨 가족에게는 지난 16년 간 수도 없이 반복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 인생은 루프. 그렇게 돌고 돌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남편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정신과에 치료를 받으러다니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다고요" "하지만 깔려있는 문제의식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I love you as much as I can, 이라는 말로 표현된 다이애나의 절박함과 그 말을 듣는 나탈리의 슬픔.


다이애나에게 의사는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고. 게이브도 그렇고. 의사와 게이브와는 춤을 추지만, 댄과는 춤추지 않지. 나 자신은 무척 다이애나에 이입되는데, 비슷하기도 하고, 그게 내 존재의 슬픔이고. 그래서 내게 의사와 게이브는, 뮤지컬이나 본진이라고, 꼭 이것일 필요는 없지만 그런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게이브는 문제가 가 아니야. 다이애나의 문제를 보여주는 표상일 뿐이지. 사실은 댄에게도, 나탈리에게도. 


다이애나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나탈리를 댄을 사랑하고 살아가려 하는 지. 사실 나는 댄과 나탈리 때문에 많이 울지만, 다이애나도 나의 그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I love you as much as I can 에 담긴 진심. 사랑이 아니라면 그렇게 꾸준히 치료를 받아 왔을 리 없고, 결국 댄의 설득에 사인을 하는 것도. 다이애나의 사랑이란 걸. 


수퍼보이와 투명인간 소녀, 는 너무 좋아하고 그 노래를 하는 나탈리가 너무 안타까워서 엉엉 우는 넘버이긴 하지만, 나탈리가 엄마의 사랑을 못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탈리를 미워한 적도 게이브와 차별한 적도 없어. 다이애나의 최선을 다한 사랑이, 질병에 가리워져 나탈리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망각의 노래에서 나탈리가 엄마에게 자기의 첫걸음 처음 빠진 이를 기억하냐고 물을 때마다 웃음이 나서. 나탈리 자신은 결코 기억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엄마는 기억해줘야 하지. 나탈리는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아, 댄이 말해줬겠구나. 부모가 말해줘서 알게되는 실제론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기억. 어린시절의 나는 


나탈리가 부르는 슈퍼보이와 투명인간소녀, 들을 때마다 울긴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야 나탈리, 위로하는 편지 쓰고 싶은. 그리고 못난투명소녀,라는 초연의 번역은 좀 과했다고 생각해. 열등감이 메인이 아닌데 그런 의미가 들어가버려서. 한국의 많은 엄마딸 관객들은 또 오랜 아들 딸 차별 서사에 통곡하겠지.


자녀는 늘 서운하고 부모는 늘 미안해. 그럴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해. 평범한 삶을 주고 싶었지만 자긴 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다이애나와 그에 next to normal 이라면 충분하다고 대답하는 나탈리처럼. 정말 잘 커줘서 고마워 나탈리. normal, ordinary 이런 건 환상이라고. 행복은 비슷한 모습이고 불행은 각각 다른 모습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나는 그 행복도 멈춰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작에 가까워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른 모습일거라 생각해.


다이애나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파트너의 말은 내겐 참 상처가 된다. 다이애나는 존재가 고통인 사람인데.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고싶은 대로의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는 요구 하나 뿐인데. 다이애나를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나탈리를 보는 헨리처럼, 있는 그대로를 봐 주고 함께 가 줄 수는 있잖아. 그럴 수 없는거야? 하고.


헨리를 기대하면서, 본인이 헨리가 되는 상상은 하지 않는 거. 어젠 외로웠고. 난 외로우면, 기대를 멈춰. 내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실망하는 건, 나쁜 거니까. 더 외로워지고 싶지 않으니까. 거기서 멈추고. 방어기제 쫙 펼치는 거야. 마음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인데, 그 때 접수되는 반응은 '요구와 돌봄'. 그게 참 답답한. 아마도 내가 원했을 반응은 헨리의 Hey가 아니었을까. 뭘 많이, 해야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압박받지 않아도 된다고. Hey 얼마나 좋아. 댄의 절박함이 필요한 게 아니라. 헨리의 야! 가 필요하다고. 나와 같이 춤출 수 있는 사람을 원해. 나 좀 미친여자같아?


시간만 허락하면 넥투노 후기 책 한 권은 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도 한다. 모든 가사 소절마다 주석달 수 있을 거 같아. 개취로는 영어가사가 더 좋고. 대사(가사)가 많고 복잡하긴 하지만 라인 바이 라인으로 다 밑줄 긋고 싶고. 영어가사가 좋은 이유는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쉬운 말들 이라서. 물론 그래서 아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넥 오슷 우리나라버전을 들으면 지게 정말, 목소리에서 반짝반짝 빛이 쏟아져.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자의 생기, 극에 나오는 어느 누구보다 빛나게 살아있어서,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버전 오슷은 또 다른 의미로 깊이 후벼판는데. 마음을 막 저미고, 오열유발. 이게 K-style. 순화되었지만 더 극적인 표현. 우리나라의 다른 컨텐츠에 비해 과하냐면 그건 아니지만, 역시 가벼운 터치로 그린 브로드웨이버전이 더 맘에 들기는 한. 진심으로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볍게 더욱 가볍게 비극은 슬픔은 불통은 절망은 우리의 일상에 살아있고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게. 그렇게 그것들을 함께 견디게. hey. 더해, "무슨 고백이 졸라 이상해" 이것도 많이 순화되었지. 원래 대사는 나랑 한 번 자 보려고 별 소릴 다한다 이런 느낌이라, seduction. 그리고 널 사랑해, 를 받아들이는 미국과 한국, 온도의 차이. 급 헨리랑 나탈리는 극이 끝나기 전에 잤을까 갑자기 이런 게 궁금해지는데. 잤겠지? 안 잤을려나? 하긴 중요한 건 아니지. 잠자리가 불만스러워도 잘 극복하고 답을 찾을 거 같아 보이지만. 콘돔은 꼭 좋은 걸 쓰렴.


아직까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제"


"사랑이란, 상대방이 죄를 지으면 같은 죄를 짓고 함께 길을 걷는 거라고 생각해.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거지만,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사랑에 대해 묻자 "사랑은 얄미운 나이인가봐~" 라는 얄미운 농담을 하고난 후에 나온 진지한 말. 그러게, 그와 함께 한 번은 걸어봤어야 했는데, 끝내 인연이 닿지 않았다. 비슷한 말이 헨리의 입에서 나와서, 한 동안 생각 안났는데, 다시 생각나네.


넥투노 소품으로 오르골은 과연 몇 개가 준비되어있을 지 궁금하다.


“나 떨어져요 점점 더 깊이 그냥 다 놓고 싶어"

“제 정신이 아닌 거야 난 죽음과 춤추나봐 누가 알겠어"

“엄마가 사라지길 매일 기도했어 그러다 진짜 갈까 겁이 났고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 울었지만 이제 안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