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마리퀴리

마리퀴리 #3

bluecotton 2020. 3. 20. 13:32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오후 8시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B구역 2열 9번

 

김소향 김히어라 임별 김찬호 이예지 장민수 주다온 조훈

 

과정으로서의 과학. 과정으로서의 삶. 내 세대에서 답을 내지 않아도 되어요.

소르본대학을 향해 가는 기차 안에서, 대학에서, 루벤을 만나서, 라듐을 증명하고나서, 노벨상을 타고 나서.. 이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에 맞는 마리의 성장, 애티튜드의 차이 완벽하게 그려내는 소향마리 사랑하구요.

가득 찬 객석 때문인지, 생일을 맞은 안느히어라 때문인지, 모든 배우들 힘이 뽝 들어가서 텐션넘치는 무대에, 아슬아슬하게 답을 맞추는 느낌도 있었는데. 어후. 정말 이런 화끈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또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맙고 영광입니다.

우리가 롤모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마리. 당신이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당신이 부족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으로서 거기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좀 더 자랑스러워해도 되어요. 안느의 마음이 곧 우리의 마음. 끝까지 미안해 하는 마리를 보며 같이 우는 우리의 마음.

농장주 세번째 부인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마리의 두번째 배우자가 될 생각은 아주 많은 안느였다 (피에르보다 자기를 먼저 만났으니 스스로를 본처?라고 생각할지도ㅋ)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딸인 이렌도, 가끔은 피에르도, 루벤도, 병원장도, 루이스도, 모두 그녀에게 자신을 '설득'해줄 것을 요구한다. 상대가 설득을 원하면 기꺼이 말할 수 있고 기어코 설득하고 마는 마리이지만, 그걸 할 수 있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 것은 아냐.

마리 곁에 설득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안느 뿐이었는데, 그랬던 안느라서 마리의 죄책감은 더 클테지. 안느가 서있는 철탑을 향해 달려가면서 "안느코발스키!!!!"를 부르는 향마리의 절규가 머릿 속을 헤집고 찢어내어서 약간 미치겠는 것.

이 극의 주인공이 남자였으면 프랑켄슈타인의 '나는 왜' 적 자기연민이 작렬했을텐데. 여자 과학자는 그런 것 없죠. 매순간 자기를 증명해야하는 여자엘리트가 자기연민에 쓸 시간, 에너지. 여력이 있을리가. 마리가 조바심에 잠시 쉬지도 못하는 건, 결국 계속 증명해야해서. 우리가 남자들에게 바치는 관대함의 반만이라도 전할 수 있었다면. 마리 스스로 그렇게 채찍질 하며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표하고, 모두에게 알리고, 널리 이용하게 하고, 그렇게 스스로 덫을 놓지 않았을지도 몰라. 미안할 일도 없었을지도. 물론 이건 그냥 내 상상 속의 이야기.

극을 보는 내내, 마리가 스스로를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Love Yourself는 너무나 오래된 주제이기도 한데, 아직도 많은 여성들에겐 여전히 남의 이야기인 것이 슬퍼. 스스로를 사랑해도 된다고 말해줘야, 사랑할 용기를 내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어쩌면 안느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연대도 하고 존경도 하고, 앞으로 '더' 나가갈테고.

1막부터 감정이 넘쳤기 때문에, 2막은 너무나 걱정되었는데. 배우들이 너무 울어서 정말, 안느도 울고 피에르도 울고 관객도 울고 다 너무. 결국 마리가 무대에 홀로 서야할 시간이 왔을 때,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별피에르 정말 피에르의 마음 그대로, 그리고 같이 남은 우리는 무대에 홀로 선 마리와 같이 깊은 고독을 느낀다.

다른 걸 할 수도 있었지만, 과학이 너무 좋으니까 과학을 하는 마리. 그것이 자기 어깨에 큰 책임감을 얹을 줄은 어렸을 땐 몰랐겠지. 나는 과학만 했는데, 그게 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가. 스스로를 긍정하는 일은 외부의 시선으로도 자신을 충분히 긍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을. 마리에게 안느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계속 하는 뮤지컬 '마리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