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드라큘라

드라큘라 #4

bluecotton 2020. 3. 20. 13:26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오후 3시
샤롯데씨어터 1층 B구역 1열 27번

자넷쯤 되고, 스토리와 넘버의 구성을 이해하고 나니까 극 보면서 딴 생각도 많이 나고, 수많은 생각들이 연합하는데. 적극적인 해석을 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극 전반에 구멍이 너무나 느껴져서. 아름다운 곡을 듣는 것 +배우들의 연기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느낌 말고 이 극에 어떤 의미를 둬야할 지.

진나단이 너무나 선하고 착실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류큘과 임미나가 서로를 맞닥뜨린 순간, 두 사람의 협작에 진나단이 당할(?)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기도 했고.

솔리터리맨을 들으면서 시작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 드큘하고 너무나 닮은 설정이네. 400년이나 이어져 온 생. 딱히 누군가를 기다린 건 아니지만, 그를 만나는 순간 자기가 그를 기다려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불멸의 저주를 끊어내는 게. 외계인 vs 뱀파이어?

옌루시+임미나 페어를 처음 보는데 케미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토록 루시를 바라보는, 루시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해주고, 루시의 선택을 완전히 지지하고 지키는 임미나라. 쑤루시에 비해 독립적이고 어른스러운 느낌의 옌루시랑 아주 잘 어울린 점.

루시가 잭을 소개할 때 정신병원, 너한테 딱이야! 라고 말해도 괜찮은 사이라, 루시의 왜에????? 라는 질문도 너무 자연스럽고, 거기에 웃으며 넘어가는 미나도. 그리고 '아더'를 소개할 때, 어쩐 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도. 루시를 잘 아는 미나고, 미나가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은 루시.

임미나의 여성캐릭터에 대한 사랑은, She의 엘리자벳사에게도 이어져서, 임미나가 엘리사벳사였기 때문에 움직이는 건지, 엘리자벳사의 마음을 이해하는 타자로서 움직이는 건지 애매하지만, 이야기 속의 '엘리자벳사'을 보듬어 안으러 달려나가는 건 분명했던.

거기서 엘리자벳사의 마음이 되어 드라큘라를 향해 '대신해' 표현하는 원망의 마음. 엘리자벳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을 저주하게되는 것은 그를 사랑했던 엘리자벳사가 원한 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일인 걸. 러빙유에서 이 못난놈과 저 못난놈 사이에서 어떤 불쌍한 놈을 골라야하나 곤란해지는 임미나가, 그래도 조나단이 낫지, 로 결정하는 거 항상 너무 좋은데, 왜 오늘 유독 이 결정에 눈물이 나는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류큘이 동큘에 비해, 같은 영혼의 미나머레이인지, 엘리자벳사 그 자체로 미나를 느끼는 건지가 약간 애매하다고 느껴지는데. 과거의 엘리자벳사도, 현재의 미나머레이에 대해서도 규정을 하고 가는 건 분명 아닌데. 능동적인 존재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 같긴 함. 저는 이 류큘의 찌질미가 조금 감당이 안되는 게 있고요...;;; 팬텀에서도 시라노에서도 그 외의 다른 극에서도, 저렇게 멋지고 본투비 귀족인 사람이, 사랑앞에서 너무나 작은 사람이 되는 거 약간 위화감 느끼는 듯.

임미나는 여성인 본인을 사랑하고, 남자나 사랑을 믿지 않는 다는 점에서 무척 현실적인 느낌이 있는 사람인데, 이런 점이 일종의 생명력이 되고, 그 생명력을 탐하는 드라큘라인 것. 사실 류큘에 맞춘 임미나의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점이기도 한데,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루시가 장례식 마치고 무덤에서 영원한 삶 노래하려고 뛰쳐나올 때 의상, 흰색 드레스에 꽃장식이 화려한 옷인데. 영화 미드소마 생각도 났고, 무엇보다 연극 비너스인퍼에서 벤다가 오디션용으로 가져온 두나예브의 드레스랑 너무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쓰임새 같음. 나중에 그 드레스는 붉게 변하는데 뱀파이어걸들의 의상도 붉은 색. 왠지 모두 다 흰색 의상을 입고 있었을 때 뱀파이어가 된 것 같지. 드큘이 이 분들에게 옷을 만들어주거나 했을 리는 없고 (오히려 드큘 옷을 그들이 만들어줬겠지) 이 붉은 색상은 분명 피를 탐하면서 적셔진 옷이다. 그에 반해 미나의 옷 색깔은, 수술복색깔들. 파랑과 녹색. (수술복 색깔이 녹색인 건 수술과정에서 피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인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미나 역시 윙스와 시덕션에서 드큘을 받아들일 때 입고 있는 의상은 흰 색. 드큘의 신부를 상징하기도 할테고. 흰 옷에 갇힌 여성들이 주로 흡혈의 대상이 되는 걸 수도 있고. 부케를 취하는 드라큘라의 습성(?)을 생각하면. 드라큘라는 어떤 여성들을 찾아가는가. 미나만 선택의 여지를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테고.

오늘 보면서 새삼 이해 안되는 건, 아더는 정말 루시를 사랑하나? 반헬싱은 정말 줄리아를 사랑하나? 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죄를 짓고 같은 길을 걷지 않는가. (답: 신을 더 사랑함) 시덕션에서 "그댈 위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어" 이 가사를 좋아한다. 뜻하지 않게 악인을,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용인받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용기있는 선택이란. 단죄의 위치에 서기 보다는 그 사람과 같은 입장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죄를 짓고 같은 길을 걷기. 사람들이 드라큘라를 다 같이 잡으러 가기 전에 부르는 노래에서 임미나가 자신이 들고 있는 촛불을 끄지 않는 까닭은. 그동안 선택해 왔듯. 그에게 가서 함께 손을 잡고 빛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 애초에 그가 빛이냐 어둠이냐가 중요하지 않게 된 것도 있고.

궁금한 건, 만약 미나가 그 날 기차역에서 드큘을 선택했다면, 드큘의 런던원정(?)계획은 무산되었을 것인가. 아무리 봐도, 미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기는 극임. 쥐뿔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예쁘고, 강인하고, 쉽게 넘어오지 않으면서, 올바른, 하지만 결국 이런 찌질한 나를 선택한 미나. 그리고 미나가 선택해준 순간 다 이뤄서 떠나죠. 남아있는 미나입장은 1도 신경안쓰고. 자기는 루시 뱀걸들 다 데리고 다니면서 지맘대로 살아놓고 무슨 400년의 사랑이나 공허, 외로움 따위를 논하고 있는가? 쩝

나는 드큘이 아무리 예뻐도 미나 못붙여준다. 알아서 재기하도록 해. 근데 스스로 가지도 못해서 미나한테 부탁하는 이 무슨. 맘에 안들어. 이렇게까지 미나에게 맡겨놓은 게 많은데, 과연 미나로서 완성되는 드큘 캐릭터가 의미가 있나 싶다. 임미나 이렇게까지 안간힘을 써서, 미나를 그저 남자들 환상속에 박제된 성녀캐로 두지 않으려고 저렇게 애를 쓰는데, 현타가 확 오는 지점이고. 그만 볼 때가 됐다. 내일 자체기준 전캐 찍으니까 어떻게든 결정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