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02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20:00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객석1층 1열 21번
1. 극이 끝나면서 바라보게 되는 건 결국 암네리스의 뒷모습이다. 우리 모두, 둘 다 잘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선택하고 후회없이 나아간다는 게 그 용기와 의지에 새삼 마음이 울리고, 아이다라는 백마탄 초인이 궁전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자유로운 모습으로, 마굿간 어디에서 나타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가져온 평화와 이 의미를 지키고 가져갈 암네리스의 어깨에 놓여진 무게에 대하여.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 라다메스가 반드시 탐험하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머물고 싶었던 누비아를 품은 아이다의 마음. 그 시선에 흐트러짐이 없어서 누가 키웠는 지는 몰라도 라다메스 참 잘 자랐다. 돌무덤 안에서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두 사람과 그들을 지켜보며 여기가 내 자리임을 아는 암네리스. 썸머암네의 목소리가 1막의 스트롱부터 너무나 단단한 왕재의 목소리라 새삼 감격했다. 패션도 사랑도 정치도,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집트가 되는 암네리스. 돌무덤이 닫히고 무대에 걸어나오는 암네리스는 이 이야기의 전달자이면서, 자신의 치적을 자랑스러워해도 될, 기록된 역사를 갖고 있는 위대한 왕. 썸머보다 더 적절한 사람은 없는 것 같기도. 이집트와 누비아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생각하는 두 주인공이 공주들인 것이 좋다. 아마도 실제로는 그랬겠지요. 인류의 번영과 평화에 그들이 없었을리 없다. 치적과 전리품, 폭력성을 서로 겨루는 유치한 짓은 또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기어코 답을 찾고 평화를 가져올 공주들.
2. 전나영 한국에 와서 아이다 해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 엉엉엉 네헤브카가 희생될때와 메렙이 죽을 때 그 한뼘의 성장과 태도의 차이에 약간 죽을 것 같다. 특히 메렙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슬픔보다, 누비아의 공주로서 그의 죽음을 치하하고 기억하려는 의젓한 태도가 도리어 격하게 아프다. '애썼다, 메렙. 네 말대로 내가 너의 공주다.'
3. 파라오의 심판을 앞두고, 라다메스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이다를 바라보고, 아이다는 행여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를 구하는 걸 망설이게 될까봐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정말 속이 아플만큼 슬퍼. 그리고 선고를 내리는 암네의 눈물에 결국은 나도 눈물이 똑.
4. 1열에 앉았는데 아이다보기엔 조금 좋지 않은 느낌. 이 무대를 쥐고 흔드며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아이다의 영향력과 리더쉽이 다 눈에 안들어 와. 반면 라다와 암네, 조세르를 보기는 매우 좋았다. 좀 왔다갔다 할 듯. 반주 간주 사이에 속사포로 쏟아내려가는 배우들의 대사가 조금 부담스럽지만, 정말 배우들이 너무 잘한다. 이 템포로 이렇게까지 전달하는 건 정말 배우들 역량이 좋은 것.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극이 완벽해질 걸 상상하면 나 이미 고꾸라져. 전나영 정선아 최재림 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 하려고 태어났쥐~ 아니아니 전생에 아이다 암네 라다 맞지?
5. 오늘 인터넷 어딘가에서 '서로 사랑했지만 타이밍 같은 것들 때문에 이루지지 못한 사랑과 우정사이 대나무숲 이야기'를 보았는데, 아이다 관극의 유일한 부작용은 '연애를 하고싶다' 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아침. 사랑의 타이밍이 맞았을 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아이다의 교훈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고, 그 기적같은 타이밍과 만남은 가치가 있었다는 것 역시 아이다의 교훈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