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라노

시라노 #02

bluecotton 2019. 8. 18. 13:15
2019년 8월 18일 일요일 오후 2시 00분
광림아트센터 BBCH홀 1층 F열 13번
 
조형균 나하나 김용한 조현식 최호중 육현욱
김효성 문갑주 강동우 지원선 추광호 이무현 김강진 정원철 전기수 손준범 김대식 장예원 김수정 가희 강기연 이은지 이정은 임소윤 

균라노로 시라노 자둘을 했고 아무래도 나는 도통 시라노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웅라노에게서 시라노의 공적자아가 도드라지고 거기서 오는 감정의 연장선에서 록산에 대한 마음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균라노에게서는 시라노의 사적 자아가 도드라진다. 록산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일상에 무척 특별한 일이며, 시라노의 공적자아는 균라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인 것.

그래서 벨쥐락의 여름이 비극적으로 아름다운데, 마음은 같으나, 함께 걸을 수 없는 둘의 미래를 암시하는 아름다운 단조선율. 시라노를 닮고 싶고, 시라노가 되고 싶기 때문에, 그와 사랑을 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록산이다. 

록산의 누군가에 대한 고백을 듣는데, 균라노의 눈동자에 물이 차오른다. 후일, 발코니 아래서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전한 균라노의 고백은, 당시 자기의 것인 줄 알고 들었던 고백이 정말로 자기의 것이었다면 록산에게 되돌려줬을, 아마도 전날 숙고하며 작성했을 답변으로서의 고백.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록산은, 전날 극장에서 본 시라노의 검술을 복기하고. 엇갈리고, 엇갈리고, 엇갈리고, 그래서 아프고, 아프고, 아픈. 

소년 크리스티앙 용한티앙. 가스콘부대의 일원이 되고싶어하는 열망은 강하게 드러나지만, 너무나 소년스러움에, 록산에 대한 열망이, 정말 좀 첫키스가 목적인 인셀느낌이 나면서, 이 연애사의 바깥으로 나가, 확실하게 시라노와 록산이 만든 극의 조연이 된다. 상대적으로 시라노의 사랑이 성숙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야시시축제의 여성시인들의 분장에서 레드북의 로렐라이 문학회를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안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귀족이 아닌 사람들, 남자가 아닌 사람들을 그저 시에 무관심 하거나, 그냥 좋은 시를 즐기기만 하는 피동적 위치에 두지 않고, 유치한 삼행시일지언정, 스스로 자기의 시를 쓰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것이 시라노라는 대장이 해야하는 어떤 임무처럼 그려지는 것도, 록산이 그것을 존경하며, 나도 그런 것을 해보겠노라 선언하는 사람인 것도 좋다. 라그노의 아내가 그가 쓴 시가 적힌 종이를 빵봉지로 쓰면서 그 시가 널리 퍼져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시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서 '살아있는' 시를 그린 것이 좋다. <스웨그에이지;외쳐조선>에서도 다뤄졌던 내용이고, 이것이 구식이라면 구식이지만 뻔하고 당연한 걸 더 자주 뻔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 부족해. 우리의 삶에 박혀야해. 체화. 현대의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에 바라는 것도 이런 시의 역할이고.   

'페스트리와 시'에서 야시시 축제인들이 시를 쓰는 동안 시라노는 록산에게 줄 편지를 고심하며 작성한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백 명의 장정 정도면 적당하다는 말, 시라노는 이런 어려움들을 자신의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거인을 불러와'를 부르며 백 명의 장정을 만나러 가는 길이, 외롭지만 당당하고, 거기에 사랑이 있고, 의연하게 자기의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남들 눈에는 비범해 보여도, 시라노에게는 시라노 자신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겠지. 싶다.   

재연에서 바뀐 것들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 

'공연을 시작해' 에서 르브레와 라그노가 함께 나와 자연스럽게 박수를 유도하며 (관객의 박수라는 참여를 통해 무대가 열린다는 느낌으로) 극을 시작하는 것도 좋고,  록산과 크리스티앙이 처음 대화를 나눌 때 옆에서 가정교사가 록산이 할 말과 속 마음을 대신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고, 시라노와 결투하는 사람이 발브레가 아니고 드기슈 본인인 것. 록산이 드기슈와 함께 극장에 온 게 아니고 가정교사와 함께 자리하는 것, 그리고 드기슈는 추기경의 옆자리에 앉아, 이 사람의 계급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 몽플레리의 발음에 대한 지적이 아닌, 발연기로 맥락없이 후원자를 아부하면서 (=PPL이나 해댐으로써 ㅋㅋ ) 극을 망가뜨려 놓은 것에 대해 시라노가 분노하는 것, 옆의 삐에로가 무대에 등장한 시라노의 퍼포먼스를 보조하는 것, 그리고 끝나면 그에 대한 페이(?)를 지급하는 것. 시라노가 자신의 코(결점)를 드러내 분위기를 좋게 하고, 결국은 그날 극장에 반문한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것. 시라노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재능, 관객들에 대한 존중, 도와주는 보조들에 대한 존중이 고스란히 보여지며 시라노가 누구의 편인 지 알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록산. 시라노의 캐릭터가 훨씬 다층적이 된 것 같다. 공연장 깽판러라기 보다는 공연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극작가 시라노. 극작가 시라노는 초연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

군인을 위로하는 여자들이 없어진 것도 좋고, 크리스티앙이 가스코뉴에 들어온 날 계집애같다고 놀림받지 않는 것도 좋다. 용티앙이 가스콘에 현혹되는 것이, 허세부리는 남자다움이 아니라, 권력에 저항하는 기개와 용기인 것도 좋고. 

재연에 달라져서 좋아진 점은 앞으로 계속 생각나는대로 추가할 예정.  

록산과 직접 감정이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균라노. 그래서 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되고, 혼신을 다해 달에서 떨어진 나를 연기하는 삐리빠라뽕이 그렇게 슬플 줄이야. 너무나 슬펐다. 드기슈를 막아서며 우는 울음에, 록산의 혼인서약에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크리스티앙인 것에 대한 슬픔의 뉘앙스가 담겨 앞장면과 연결이 된다. 

록산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달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시라노도, 시라노 자신에게는 그냥 평범한 자기자신일 뿐이라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슬프게 느껴졌다. '나홀로(alone)'가 그래서 갑자기 튀는 느낌도 있지만, '거인을 데려와'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전장에 나가는 발걸음이, 연인과 헤어져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슬픔, 앞으로에 대한 결심인 것이 분명하게 전달되기도 하는 것.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결투씬을 두 번째로 보게 되니, 이 결투의 승자를 결정지은 것이 전쟁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연전의 승자는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은 죽음으로 록산을 속인 죄 값을 받았고, 이제 시라노는 다시는 록산에게 사랑의 편지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시라노라는 본인이 갖고 있는 괴팍한 성정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은 유일하게 록산이고, 오직 그녀의 행복이, 시라노 사적자아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곁에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데도 곁에 있어야만 하는 시라노의 시간을 둔 속죄. 

프랑스적 로망을 다 때려박아 놓은, 그것도 가장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버전으로 모아놓은 시라노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왜 탐셀에 표를 더 잡아두지 않았을까.